불량한 바보 돌쇠 추인호
나는 이 세상에서 한 평생 복음 전달자로서, 사랑의 실천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시며 사역자의 길을 달려가다가 지난 8월 21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긴 마라톤을 마치신 어느 한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그분은 목사님으로 일평생 충성스럽게 섬기시다가 정년퇴임하시고는 곧바로 선교사로 헌신하셨습니다. 한국의 개척교회를 위하여 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시던 중 그의 임시거주지가 있었던 택사스에서 향년 81세로 홀로 소천하셨습니다.
나는 '추인호'라고 그분의 성함을 쓰고 이렇게 읽습니다. '불량한 바보 돌쇠'라고 말입니다. 오늘 내가 왜 그렇게 읽어야 하는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 그분은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으로서 불량하였고 아버지로서도 불량하셨으며 가장으로서도 불량한 사람입니다. 그 아내이신 조영자사모님과 2남2녀의 자녀들과 그 후손들의 마음에는 어떤 분으로 기억되는지 모르지만 오랜 세월동안 곁에서 지켜본 나로서는 가정과 가족을 소홀하게 대하시는 불량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정과 가족을 소홀히 대시면서도 교회와 성도들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셨습니다. 가정보다 교회를, 가족보다 성도들을 우선시하셨던 분이셨습니다.
나와의 이야기를 하자면 나의 선친을 믿음의 선배로 존경하시며 나의 어머니 건강을 챙기셨고 나의 동생들의 삶을 염려하셨으며 나의 자녀들을 위해 항상 기도해주셨습니다. 어찌 나의 가족뿐이겠습니까? 다른 모든 성도들의 가정과 가족들을 위해서 늘 염려와 걱정을 하시며 기도하셨고 물질로도 섬기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3-34)
그런데 그분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안에 그분이 소홀히 했던 가정은 파탄이 되었겠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 가정의 주인은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가정은 누가 책임져 주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든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은 함께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자들에게는 어려움과 환난 중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소명을 감당하게 될 때,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의 가정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속해 있는 가정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계십니다.
그분은 이런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그분의 사모님이 지금까지 건강하게 지내시고 계시며 그분의 두 아들과 두 딸들도 훌륭하게 성장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그분을 가정과 가족을 소홀히 대하신 불량한 사람이라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선량하고 충실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그분은 바보였습니다.
그분은 목사이시며 신학박사이시며 신학대학 교수도 역임하셨습니다. 영어도 잘하셔서 영어로 설교도 하시고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는 계산을 할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더하기 빼기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보였습니다. 계산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자신의 부귀영달을 위한 계산을 전혀 할 줄 모르는 바보였습니다.
내가 교회에서 처음으로 재정을 맡아 관리하였던 첫해에 있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27년 전의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느 달인가 월말이 되어 재정정리를 하다보니 목사님 사례비를 드려야 하는데 아직 그달 공과금도 완전히 납부하지 못했고 선교지에 선교후원금도 전혀 보내지 못할 정도로 재정이 모자랐습니다. 그 당시에는 교회가 재정적으로 궁핍했던 시절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목사님에게 지금 형편을 말씀드리면서 "무엇부터 해결을 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목사님은 대뜸 "내 사례비부터 주시오."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 순간 '목사라는 사람이 교회의 재정이 어렵다는데 자기 것부터 챙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에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에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전액을 십일조로 정리하세요.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요?"
그랬습니다. 자신의 것이 먼저가 아니라 교회가 먼저였습니다. 이러면 다음 달 목사님 가정 살림은 어떻게 살려고 그러시나 하고 걱정이 되었지만 목사님이 시키는대로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인지라 걱정을 하면서도 그렇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어쩌실 거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설마 나를 굶기시면서 일을 시키시려고.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야." 이게 답이었습니다.
그분을 찾아와서 어렵고 힘든 형편을 하소연 하면 주머니에 있는 돈을 선뜻 다 내어주십니다. 누군가가 어렵다고 사업자금을 도와달라고 하면 빚을 내서라도 도와주십니다. 돌아가시고 안 계신 지금 그분에게 이러저러한 사연으로 큰 몫돈이나 작은 돈을 빌려간 사람들이 숱하게 많이 있을 겁니다.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알 것입니다. 그들이 그 돈을 돌려주지 않아도 받을 수 없습니다. 차용증 하나 없고 빌려간 것을 증명할 길이 전혀 없으니 말입니다.
물론 그분은 더하기 빼기를 계산을 하지 않으시는 바보이시기에 그 돈들에 대해서 관심이 없으시겠지만 곁에서 보는 우리는 정말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입니다. 한 평생을 충성스럽게 하나님을 섬기신 그분에게는 그분 소유의 집 한 채, 땅 한 평 없으십니다. 그래서 나는 그분을 존경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교회에 계산을 해 주셨고 또 앞으로도 계산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렇게 재정이 어렵던 우리 교회가 지금처럼 넉넉하고 풍족한 재정으로 전보다 더 많은 선교후원을 하며 사랑을 나누게 된 것을 보면 그분이 계산을 하지 않고 소명을 감당하며 섬기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계산하셔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풍족하게 채워주신 것이라 믿습니다.
그분은 늘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와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17:10)
세상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고 답답한 바보라고 생각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현명하고 지혜로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셋째, 그분은 돌쇠였습니다.
돌쇠라고 하면 우리는 옛날 양반집의 종이 떠오를 것입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으며 우직하고 미련스럽도록 주인의 말에 복종을 하는 그런 종 말입니다. 옛날 양반집 종은 주인이 죽으라 하면 죽는 시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죽습니다. 죽기까지 충성으로 섬깁니다. 타협이라는 것을 모릅니다. 오직 충성으로 섬깁니다.
그분이 그랬습니다. 육신이 장대한 거구에 힘도 좋았습니다. 은퇴 후에 건강 관리를 하면서 국내에 계셨더라면 아마도 백수는 충분히 누리고도 남았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그분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죽도록 충성으로 섬겼습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을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사시다가 선교지에서 선교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자로 하여금 자기의 몸을 위하여 살지 않고 다만 대신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심이니라"(고후6:15)
그분은 그랬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그분의 자세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종과 같이, 아니 종으로서 충성하는 것 그것이야 말로 자신을 주님 앞에 희생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사셨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때로는 우리는 희생될 것을 각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희생이 크면 클수록 우리가 힘쓰는 섬김은 크게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대로 살고, 우리 마음대로 욕심부리고 싸우고 이해 타산에 빠지면 헌신한다는 그 목적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과 타협을 하면 가는 길이 순탄하고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타협을 하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분은 복음에 관해서는 절대로 타협이 없었습니다. 순수복음을 이어갈 것을 주창하시며 그것을 지키시기 위하여 애쓰고 노력하셨습니다.
그분은 80이 넘은 연세에도 미국땅 어디에서든 부르면 10시간도 넘게 손수 운전을 해서 달려가 설교를 하시고 돌아오십니다.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끼니를 해결하시려니 제대로 된 음식을 드셨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일을 계속 하셨으니 과로에 영양부족이 왔을 것입니다. 평소에 당뇨와 고혈압이 있으셔서 입원까지 하셨던 경력이 있으시니 그 몸으로 그 과중한 사명을 어찌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그만 두시고 쉬시라고 만류를 여러번 했었지만 그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누구도 꺾을 길이 없었습니다. 그런 그를 두고 세상사람들은 어리석고 답답한 바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푯대를 향해 우직하게 달려간 충성스럽고 순종적인 하나님의 종,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제 그분에 대한 이야기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추인호'라 쓰고 세상사람들은 그것을 '불량한 바보 돌쇠'라고 읽겠지만 우리는 그것을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읽습니다.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라고 읽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그분을 나의 충성된 종이라고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분에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인사를 드리려 합니다.
하나님의 품에서 평안한 쉼을 누리십시오. 곧 다시 만나게 될 그날에 우리 기쁨으로 다시 만납시다.
그날까지 당신의 사랑을 우리의 가슴에 담아 영원히 기억할 것이며 당신의 복음에 대한 열정을 이어서 선교와 전도의 사명을 우리 후배들이 감당해 나갈 것입니다. 이젠 안녕히!!!
I Love My Big Brother 추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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